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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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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44차] 지방자치법안 제2독회 이미지뷰어 새창

  • 1949년 03월 03일
―(地方自治法案 第二讀會 繼續)―
◯副議長(金東元) 이 問題는 이만치 하시고 지금 飜案動議가 들어 왔습니다. 이것을 여러분 앞에 紹介하려고 합니다…….
(「報告가 있습니다」 하는 이 있음)
지금 個人報告는 못합니다. 이 飜案動議는 어저께 討議하는 地方自治法 九十八條 討議를 終結하자고 動議한 李龜洙 議員 外 두 분이 다 飜案動議를 했습니다. 그런데 國會法 四十九條에 依해서 四十三次 會議의 地方自治法 第二讀會 가운데에 九十八條에 對한 討論終結을 動議를 했는데, 이 問題가 重大한 만큼 討論을 더 展開하기 위해서 李龜洙 議員 외 두 분과 그 밖에 十七名이 飜案 贊成해서 그 動議는 成立이 된 것으로서 認定해서 지금은 그것을 可否 묻습니다. 그러고 이 飜案動議는 여러분 또 注意하세요. 在席員에서 三分之二 以上으로 可決되어야 이 飜案動議가 成立이 됩니다. 그렇게 알아 가지고 飜案動議를 決定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在席은 百五十八이올시다. 그러면 이 飜案動議를 表決에 부치려고 합니다. 議事局長, 在席이……?
(議事局長 「百五十六」이라고 對答함)
그러면 둘이 줄었읍니다. 지금 在席은 百五十六이올시다. 이 飜案動議는 어저께 討論 終結하자는 飜案動議올시다. 그 飜案動議에 對해서 可否 묻겠읍니다.
(「質問이 있읍니다」 하는 이 있음)
◯李源弘 議員 飜案動議를 하는 것은 贊成합니다마는 어떤 部分에만 限해서 飜案動議를 하는 것인지 묻고저 합니다. 어떠한 契約이라도 半쯤 履行하다가 어떠한 일이 있을 때에 解約할 수 있는 것과 같이 飜案動議는 할 수가 있읍니다마는 法律上에 依해서 契約을 一部 履行한 때에는 다시 解約치 못하는 것이 原則입니다. 그러면 萬一 이제 飜案動議를 한다면 어저께 李周衡 議員이 否決시킨 그 部分까지 살려 가지고 하는지, 卽 全體的으로 하는지 金壽善 議員이 提出한 것만 하는지, 討論終結은 全體的으로 討論 終結된 것이기 때문에 한 部分만을 들어서 飜案動議는 할 수가 없을 줄 압니다.
(「아닙니다」 하는 이 있음)
◯副議長(金東元) 飜案動議는 討論 終結한 決定을 飜案하는 것이올시다. 그러면 可否 묻겠읍니다.
(「좋습니다」 하는 이 있음)
飜案動議의 可否를 묻습니다.
(擧手 表決)
在席 百五十, 可가 七十八, 否가 七, 未決이올시다…….
(「否決요」 「다시 물어요」 하는 이 있음)
否決이올시다. 잘못되었읍니다. 否決입니다. 三分之二가 못 되어서 否決이올시다. 그러면 지금은 飜案動議가 否決되었으니까 表決에 부치겠읍니다. 이제 金壽善 議員의 修正案을 朗讀하겠읍니다. 在席員數는 百五十이올시다. 지금 方今 調査했읍니다.
(「監票員 대십시요」 하는 이 있음)
가만히 계셔요. 이렇게 합니다. 監票員이 여기와 여기와 저기서(各 列을 指示하면서) 세 분이 나온 다음에는 손을 들 때에는 여기서 세여 가지고 監票하는 이가 報告한 것과 當身 본 것이 合하면 議事局의 記錄에다가 報告케 하고 萬若 틀리면 틀린 것을 다시 해서 맞도록 할 것이니까 손들고 動搖 마시고 내리라고 할 때에 내려 주십시요. 이쪽에는 張洪琰 議員, 이쪽에는 柳鴻烈 議員, 저 끝에는 宋鳳海 議員이 監票委員으로 나와 주십시오. 지금은 한 분이 줄어서 在席 百四十九올시다. 그러면 문을 닫어 주십시요. 그리고 金壽善 議員의 修正案을 朗讀하겠읍니다.
(記錄員 金壽善 議員의 修正案 朗讀)
「第九十八條 道知事는 當該 地方의 道·市·邑·面議員이 選擧한다. 서울特別市長과 市·邑·面長은 各其 地方 住民이 直接 選擧한다」
◯副議長(金東元) 그러면 이 修正案에 對해서 묻습니다.
(擧手 表決)
議事局長, 在席 얼마요……? 그럼 在席이 百六十四…….
(「아닙니다」 「거 어떻게 된 거요」 하는 이 있음)
(場內 騷然)
(「百四十九가 어떻게 百六十四가 돼요」 하는 이 있음)
(「今時 發表할 때에 무엇이라고 發表했소」 하는 이 있음)
가만히 계세요……. 監票委員으로 調査케 하겠읍니다. 여러분 조용해 주세요. 議長이 세우지 못합니다. 記錄의 調査대로 通告할 뿐이올시다. 지금 다시 調査한 結果 자리에 앉은 이가 百六十六이올시다. 아까 그 사람들이 적어 왔는데 저 名牌를 봤다고 합니다.
(「무슨 數字가 그래요」 「監票委員 무엇해요」 하는 이 있음)
(「謀略的으로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는 이 있음)
(「다시 세어요」 하는 이 있음)
(「投票하십시다」 하는 이 있음)
그러면 여러분이 投票하는 것이 좋아요. 여러분 投票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하는 이 있음)
그러면 在席 百六十六人이 틀림없읍니까……?
(「새로 셉시다」 하는 이 있음)
그러면 投票하기를 宣言합니다. 그러면 한 十分間만 休會하겠읍니다.

(下午 十二時十五分 會議中止)


(下午 十二時二十五分 繼續開議)

◯副議長(金東元) 다 자리에 着席해 주십시요. 그리고 名牌 앞에다가 投票用紙를 돌려드릴 터이니까 各各 自己 자리에 앉아 주십시요. 다 名牌 있는 自己 자리에 다 앉아 주십시요.
◯議事局長 車潤弘 投票用紙를 나누어 드리겠읍니다.
◯副議長(金東元) 監票員 두 분을 擇하겠읍니다. 吳澤寬 議員, 延秉昊 議員 두 분이 나와 受苦해 주십시요. 그리고 名牌 쓴 자리에 다 앉아 주십시요. 그 名牌 있는 자리에 投票紙를 나누어 드리겠읍니다. 쓰는 方法은 金壽善 議員의 修正動議에 對해서 可타 하면 ‘可’라고 쓰시고, 否타 하면 ‘否’라고 쓰시면 좋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하는 이 있음)
거기에 可 字, 否 字가 있으니까 否 字를 지우시면 可가 되지 않습니까? 用紙 配給은 百六十七이올시다. 아까보다도 더 한 분 늘었읍니다. 議長이 投票하게 되었으니까 한 張 늘었읍니다.
◯議事局長 車潤弘 東쪽부터 나오셔서 投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罪悚합니다만 投票하시고 反對方向으로 나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下午 十二時三十分 投票開始)
(下午 十二時三十五分 投票完了)
◯副議長(金東元) 이제 投票한 것을 宣布해 드립니다. 在席 百六十七, 可가 八十六, 否가 七十八, 棄權이 三, 이 案은 修正案대로 可決된 것을 宣布해 드립니다. 그러면 第九十九條로 들어가겠습니다.
(「議長」 하는 이 있음)
지금 徐 議員이 말씀하는 것이 修正案이 通過되었기 때문에…… 原案에 依支해 가지고 定한 것이므로 그 修正案이 成立된 까닭에 그걸로 因해서 自然的으로 多少 고치지 않으면 안 될 것도 있고 하니까 그런 것을 고칠 일도 있겠고 하니 오늘은 일로 한 二十分밖에 안 남었으니까 그것을 整理해서 來日 討議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하는 이 있음)
그러면 여러분 그만큼 諒解해서 오늘은 일로 會議를 中止하고 來日 定刻에 開會하겠읍니다.

(下午 十二時四十分 散會)

지방자치에 관한 입법(지방자치법·지방행정에관한임시조처법)

1) 「지방행정에관한임시조처법」의 제정(1948년 11월 17일 법률 제8호)

① 정부의 「지방행정조직법안」 발의 및 그 내용
상임위원회의 구성을 마친 제헌국회는 정부수립 후 닷새만인 1948년 8월 20일 지방자치법을 “내무치안위원회와 법사위원회가 연석하여 조속히 기초하여 본회의에 상정”하도록 결의했으나 註01
註01
제1회 국회 제45차(1948년 8월 20일) 속기록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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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위원회가 기초에 막 착수한 9월 13일 이승만 정부가 「지방행정조직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註02
註02
제1회 국회 제65차(1948년 9월 14일) 속기록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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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제안이유는 동법을 “지방자치조직법이 시행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시행함으로써 건국 초의 사회적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었으나 이는 한시법이 아니라 국회가 스스로 지방자치법을 제정하기 전까지는 ‘항구법’으로서의 지속성을 가지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註03
註03
제1회 국회 제81차(1948년 10월 4일) 속기록 9면(무소속 신성균 의원의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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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용은 철저하게 중앙정부의 통제에 복속하는 지방행정조직을 규정하는 것이었다. 전문 20개조의 간략한 내용으로 구성된 동 법안은 제2장에서 시·도에 각각 시장·도정관(道政官)을 두도록 하면서 이들은 수도경무부의 수도총경과 함께 “내무부장관의 지휘 감독을 받으며 각 부처 소관사무에 관하여는 국무총리 또는 각부 장관의 지휘 감독을 받”도록 하고(제8조), 다시 시장은 구청장의, 도정관은 부윤·군수·경찰서장·소방서장의, 수도총경은 경찰서장·소방서장의 명령 또는 처분이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이를 중지 또는 취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제9조) 철저한 중앙집권적 행정조직을 구상하였다. 한편 각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선임하는 방법에 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음으로써, 헌법 제100조에 따라 여전히 효력을 가지는 미군정법령에 따른 정부 임명제를 채택했다. 註04
註04
「지방행정조직법안」(초안)의 내용은 제1회 국회 제50차 속기록(1948년 10월 2일)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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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국회에 의한 「지방행정에관한임시조치법」으로의 수정
위 법안을 제출받은 국회 내무치안위원회의 구성을 살펴보면 위원 20명 중 위원장(신성균, 동인회)를 비롯하여 간사(홍순옥·장홍염), 내무분과 및 치안분과의 주사(主査, 배헌·이만근) 등 10인의 위원이 모두 소장파로 분류되고 있었는데, 위 위원회에서는 “정부가 중앙집권적 지방조직을 피하고 있지만, 내무치안위는 완전한 지방자치제도를 채택하기로 하였”음을 천명하면서, 법률안의 명칭 자체를 「임시지방행정조직법」으로 수정하여 본회의에 상정하였다. 본회의는 제80차 회의(1948년 10월 2일)부터 제1독회에 들어가 제89차 회의(동년 10월 27일)까지 이 법안을 심의했는데, 그 과정에서는 정부 원안이 지방자치의 취지를 몰각한다는 비판이 쇄도하여 (i) 법안을 정부에 반환하고 속히 국회에서 지방자치법을 발의하자는 주장과 (ii) 법안 자체는 두되 국회에서 「지방자치법」이 제정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적용되도록 명시적인 수정을 가하자는 주장이 주를 이루었고, 이에 대해 김준연(한민)의 경우 정부 원안과 유사한 안을 대안으로 제출했으나 본회의에서 미결(未決)로 폐기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국회는 ① 법안의 제명을 「지방행정에관한임시조치법」으로 하고 ② 동법의 유효기간을 그 “시행일부터 6개월 이내”로 한정 명시하는 한편(제19조), ③ 수도경무부에 관한 규정(원안 제7조)은 삭제하며 ④ ‘도정관’은 ‘도지사’로 수정하고, ⑤ 특히 위 한시적 유효기간 내라 하더라도 “읍장·면장은 선거한다”는 조항(제17조 제2항)을 신설하여 10월 27일(제1회 국회 제89차 회의) 가결하였다.
그러나 이를 이송받은 정부는 10월 30일 정부 원안대로 수정하라는 내용의 재의요구를 하였고, 註05
註05
제1회 국회 제92차(1948년 10월 30일) 속기록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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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해 국회는 1948년 11월 4일 헌법(제40조 제1항)에 따른 재의결 정족수인 재적의원 2/3의 출석과 출석의원 2/3의 찬성을 상회하는 ‘재석 136명(재적의원 200명), 찬성 103명’으로 국회에서 결의했던 법률안을 재의결했고, 註06
註06
제1회 국회 제95차(1948년 11월 4일) 속기록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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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를 다시 이송받아 「지방행정에관한임시조처법」(1948년 11월 17일 법률 제8호)으로 공포했다. 註07
註07
공포된 법률의 제명이 「조치(措置)」에서 「조처(措處)」로 바뀐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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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에 따르면 이 법률의 유효기간은 1949년 5월 17일까지일 것이었으나, 뒤에서 보듯 「지방자치법」의 시행은 그보다 약 1개월 반 늦게 이루어졌고 「임시조처법」은 그 때까지 사실상 시행될 수밖에 없었다.

③ 「지방자치법」의 제정(1949년 7월 4일 법률 제32호)
(가) 제2회 국회에서의 최초 논쟁의 귀결
정부와 별개로 국회 내에서 「지방자치법안」을 기초한 내무치안위원회와 법사위원회는 1949년 1월 31일 공동으로 위 법안을 본회의에 제출했고 註08
註08
제2회 국회 제19차(1949년 2월 1일) 속기록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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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국회 제27차 회의(1949년 2월 10일)부터 이에 대한 심의가 이루어졌다. 이 초안의 내용은 제정 「지방자치법」의 그것과 대비하여 후술하는 몇몇 조항을 제외하면 모두 동일하므로 이를 개관해 보기로 한다.
초안의 구성은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법적 지위·조례 및 규칙 제정권을 규정한 「제1장 총칙」, 국회법의 축소판에 해당하는 지방의회의 조직·의사 규정을 모은 「제2장 지방의회」, 지방의회 의원의 선거법 규정을 담은 「제3장 선거」, 중앙정부의 정부조직법에 해당하는 「제4장 집행기관」, 지방자치단체의 공유재산 및 예산·결산 등 재정법 규정을 모든 「제5장 재무」, 총칙에서 규정하지 않은 하부 지방조직에 관한 「제6장 군·구·동·리·서(署)」, 그리고 조례나 집행기관의 명령이 헌법·법률에 위반되는 경우 국가기관에 대한 소청절차를 규정한 「제7장 소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같이 중앙 국가기관들의 여러 기능에 해당하는 것을 하나의 단행법에 담은 이 법률의 성격에 따라 그 조문 수는 본문 159개조, 부칙 4개조로 방대하고, 이는 오늘날의 「지방자치법」도 본문 175개조에 지나지 않음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을 감안하여 오늘날의 관점에 비추어 다소 특이한 대표적인 규정들만 몇 가지 추려보면, ① 오늘날의 「지방자치법」이 광역자치단체인 (특별·광역)시·도와 기초자치단체인 (일반)시·군·구로 대별되는 데 반해, 이 초안은 기초자치단체를 시·읍·면으로 규정하고(제2조) 그에 부속된 하위 지방기구로 군·구·동·리와 서(경찰서·소방서)를 두고 있다(제6장). ② 종전의 부(府)를 일괄하여 시(市)로 개칭하였다(제4조). ③ 특별시·도·시·읍·면의 장을 모두 「지방의회에서 무기명투표로써 선거」하는 간접선거제를 채택하였다(제98조). ④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법령에 위반되는 행위를 한 때에는 특별시장·도지사의 경우에는 국무총리가, 시·읍·면장의 경우에는 도지사가 각각 탄핵소추할 수 있도록 했다(제110조). ④ 특히 지방의회가 자치단체장을 불신임의결할 수 있고, 이 경우에 단체장은 상급기관(단체에 따라 대통령이나 도지사)의 허가를 얻어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지방자치제도에 도입했다(제122조).
독회 과정에서 가장 치열하게 논란되었던 것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방식이었다. 첫째는 「도지사·서울특별시장과 시·읍·면장은 각기 지방의회에서 무기명투표로써 선거한다」고 규정한 초안 제98조 제1항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김수선(청구회) 의원이 「도지사는 당해 지방의 도·시·읍·면의원이 선거한다. 서울특별시장과 시·읍·면장은 각기 지방 주민이 직접 선거한다」고 하여 직선제를 대폭 도입하는 수정안을, 그와 반대로 이주형(이정회) 의원은 「도지사와 서울특별시장은 대통령이, 시·읍·면장은 도지사가 각각 임명한다」는 수정안을 각각 제시하여 격론을 벌였으나 표결 결과 후자는 부 64표로 부결되고, 전자의 수정안이 가 64표, 부 36표로 가결되었다. 註09
註09
제2회 국회 제42차(1949년 2월 28일) 속기록 16-20면, 동 제43차(1949년 3월 2일) 속기록 4-9면. 이에 대하여는 재석인원 수를 잘못 세었다는 민국당 측의 항의로 다음 차 회의에서 재표결을 하기도 하였으나 역시 가 86표, 부 78표로 가결되었다. 제44차(1949년 3월 3일) 속기록 9-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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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하위 지방조직의 선거제에 관하여도 「군수는 도지사의 추천으로 내무부장관을 경유하여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한 초안 제147조 제1항에 대해 김수선 의원은 「군수는 읍·면회 의원이 선거」하도록 하자는 수정안을 제시하여 정파별로 찬성(성인회 박윤원·노일환·황병규)과 반대(이정회 조병한, 대한노농 허영호, 민국당 김재학)의 토론이 벌어졌으나 이 수정안의 경우 미결에 그치고 원안대로 가결되었다. 註10
註10
제2회 국회 제48차(1949년 3월 3일) 속기록 13-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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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들 선거제도가 적용될 이 법의 시행기일에 관하여도 「공포 후 10일」로 되어 있는 부칙 제1조 원안에 대해 김준연(민국) 의원은 이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는 수정안을 내놓았으나 이재학(청구회)·박찬현(동인)·김옥주(성인) 의원의 반대에 부딪쳐 부결되고 원안이 통과되었다. 註11
註11
제2회 국회 제49차(1949년 3월 9일) 속기록 17-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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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각 쟁점에서 논의의 결론이 원안으로 수렴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은, 소장파가 주축을 이룬 내무치안위(위원장 동인회 신성균)가 상대적으로 민국당 계열이 중심을 이룬 법사위(위원장 서상일)과 연석하여 법안을 기초함으로써 두 정파 간의 사전절충이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註12
註1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연구소 편, 『한국현대사의 재인식 2: 정부수립과 제헌국회』, 1998, 3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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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재의요구」를 둘러싼 제2회 국회와 정부의 공방
제2회 국회는 위와 같은 내용으로 「지방자치법안」을 1949년 3월 9일 제49차 본회의에서 가결하고 17일 정부로 이송했으나, 14일 뒤인 3월 31일 정부는 (i) 전국적으로 통일적인 행정을 해야 할 분야가 많은데다 (ii) 완전한 지방자치는 아직 시기상조이며 (iii) 경찰권을 가진 도지사와 서울특별시장까지 선거한다면 치안상 중대한 지장이 예상되므로 당장의 전면선거 실시는 곤란하다는 등의 논거를 들어 위 김준연의 수정안에서와 같이 「법률의 시행기일을 대통령령에 위임하여 주도록」 국회에 재의를 요구했다. 註13
註13
제2회 국회 제69차(1949년 4월 1일) 속기록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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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국회에서는 다시 ① 정부 요구대로 시행일자를 대통령령에 위임하자는 한민당계(김준연·서우석 등) 수정안과 ② 국회에서 의결했던 원안을 두고 표결한 결과 재석 167 중 가 82, 부 80이 나옴으로서 비록 후자의 안이 상대다수의 찬성을 얻기는 했으나, 앞서와 달리 재적의원 3분의 2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찬성에는 미치지 못하여 이를 법률로서 확정시키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① 위 정부·한민당계 안과 ② 한 발 물러서 법률을 「공포 후 90일 이내」에 실시하자는 김수선 의원의 수정안에 대해 다시 표결을 하였으나 역시 후자가 재석 169, 가 86, 부 83표로 상대다수만을 얻은 채로 이를 1949년 4월 15일 다시 정부에 이송하였다. 그러자 정부는 이 이송된 안도 재적의원 3분의 2 출석, 출석의원 3분의 2 찬성을 얻어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재차 재의요구를 하되, 이번에는 지방자치법을 「공포한 후 1년 이내에 시행하되 시행기일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부칙에 규정해 달라는 이의를 붙여 4월 26일자로 재환부했다. 註14
註14
제2회 국회 제86차(1949년 4월 27일) 속기록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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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국회는 논란 끝에 “정부의 재재의요구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되므로 위헌”이고 따라서 무효라고 선언면서 4월 30일 정부에 이를 반송했고, 註15
註15
제2회 국회 제88차(1949년 4월 30일) 속기록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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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제2회 국회의 회기만료로 폐회했다.
그러자 이승만 정부는 “반송이 오히려 헌법에 위배되어 무효이므로 「지방자치법안」은 국회에 계류되다가 회기만료로써 폐기(소멸)된 것”이라고 5월 12일자로 국회에 「폐기통고」하였다. 註16
註16
제3회 국회 제1차(1949년 5월 23일) 속기록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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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제3회 국회의 첫 회의부터 논의의 대상이 되었으나, 결국은 또다시 「법제사법위원회와 내무치안위원회와 연석회의에 회부하여 적저리한 지방자치법안을 입안 제출」하기로 결의했고, 註17
註17
제3회 국회 제7차(1949년 5월 30일) 속기록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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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위원회에서 종전의 안과 거의 그대로 제출된 법안을 본회의에서는 6월 16,17일 이틀에 걸쳐 일사천리로 전 독회를 마쳐 통과했고, 이를 이송받은 정부가 비로소 공포하여 「지방자치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다) 「지방자치법」의 제1차 개정(1949년 12월 15일 법률 제73호)
「지방자치법」이 최초 시행된 지 3개월이 채 안 된 1949년 9월 28일 정부에서 「지방자치법중개정법률안」을 제출함에 따라 내무치안위에서 이를 심사하여 11월 28일 본회의에 상정하였는데, 이는 다시 정부의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통제를 대폭 강화하고자 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였다. 정부 안의 요지와 그에 대한 내무치안위의 심사경과를 살펴보면, 우선 정부 안은 ① 조례·규칙을 제정하는 데 있어 도와 서울특별시의 경우 내무부장관, 시·읍·면의 경우 도지사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안 제8조의2) ② “국가공익상 지방의회가 심히 부당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자치단체장이 아닌 정부가 지방의회를 해산할 수 있도록 하며(안 제24조의2), ③ 시·읍·면장이 국가위임사무에 관해 “국가공익에 배치되는 행정을 했을 때”에는 정부가 그를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제102조, 제109조)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중 ①,②의 조항은 소관 상임위인 내무치안위원회에서 삭제한 수정안을 본회의에서 그대로 가결시켰고, ③의 조항은 시·읍·면장이 “법령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였을 때”에 한하여 도지사가 탄핵재판소에 파면의 소추를 하는 데 그치는 것으로 위 위원회에서 수정, 본회의에서 그대로 가결되었다.
그러나 정부 안은 ④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i) 조례에는 3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에 처하는 규정을, (ii) 그리고 규칙에는 1만원 이하의 과료에 처하는 규정을 각각 제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치입법에 의한 형벌법규의 제정가능성은 넓히되 그 상한을 명시하였는데 이는 위원회 수정안에서 삭제되었으나 본회의에서 원안대로 채택되었고, ⑤ 또한 대통령이 천재지변 기타 비상사태로 인하여 선거를 실시하기 곤란하다고 인정할 경우에 선거를 연기·정지할 수 있도록 한 정부 원안에 대해 내무치안위는 이를 “국회의 승인을 얻어”서만 할 수 있도록 수정하였으나 역시 본회의에서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그리하여 1949년 12월 15일 법률 제73호로 공포(1950년 1월 5일 시행)된 이 법률이 시행된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지방의회 선거는 계속 유예되다가(그 동안 시·읍·면장도 도지사가 임명하였다), 세칭 부산 정치파동을 앞둔 1952년 4월 25일에서야 최초의 시·읍·면의회, 그리고 1952년 5월 10일 도의회의 각 의원선거가 실시되었다.
註01
제1회 국회 제45차(1948년 8월 20일) 속기록 7면.
註02
제1회 국회 제65차(1948년 9월 14일) 속기록 18면.
註03
제1회 국회 제81차(1948년 10월 4일) 속기록 9면(무소속 신성균 의원의 논평).
註04
「지방행정조직법안」(초안)의 내용은 제1회 국회 제50차 속기록(1948년 10월 2일)에 수록되어 있다.
註05
제1회 국회 제92차(1948년 10월 30일) 속기록 11면.
註06
제1회 국회 제95차(1948년 11월 4일) 속기록 13면.
註07
공포된 법률의 제명이 「조치(措置)」에서 「조처(措處)」로 바뀐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다.
註08
제2회 국회 제19차(1949년 2월 1일) 속기록 1면.
註09
제2회 국회 제42차(1949년 2월 28일) 속기록 16-20면, 동 제43차(1949년 3월 2일) 속기록 4-9면. 이에 대하여는 재석인원 수를 잘못 세었다는 민국당 측의 항의로 다음 차 회의에서 재표결을 하기도 하였으나 역시 가 86표, 부 78표로 가결되었다. 제44차(1949년 3월 3일) 속기록 9-10면.
註10
제2회 국회 제48차(1949년 3월 3일) 속기록 13-17면.
註11
제2회 국회 제49차(1949년 3월 9일) 속기록 17-20면.
註1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연구소 편, 『한국현대사의 재인식 2: 정부수립과 제헌국회』, 1998, 319면.
註13
제2회 국회 제69차(1949년 4월 1일) 속기록 1면.
註14
제2회 국회 제86차(1949년 4월 27일) 속기록 1-2면.
註15
제2회 국회 제88차(1949년 4월 30일) 속기록 2-4면.
註16
제3회 국회 제1차(1949년 5월 23일) 속기록 1면.
註17
제3회 국회 제7차(1949년 5월 30일) 속기록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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